사주학의 유래와 발전사
자평명리학 혹은 사주학의 유래와 발전사
정식 명칭인 자평명리학 혹은 사주학을 민가에서는 “역학(易學)”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역(易)”이란 점술을 의미하며 역의 역사는 약 5,000년 정도가 된다. 본래 역(易)은 고대 중국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전쟁 같은 나라의 중대사를 앞 두고 점을 쳐서 결정하였던 점서의 도구를 일컫는 것으로 나라마다 각기 다른 역이 있었는데 특별히 주나라의 역을 “주역(周易)”이라고 하는 것이다.
중국 서주(西周)시대, 초기에 통용되던 역에는 세 종류가 있었으니 이른바 “연산역(連山易)”, “귀장역(歸葬易)”, 그리고 “주역(周易)”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三易(삼역)이라고 하는데 이 중에 “연산역(連山易)”과 “귀장역(歸葬易)”은 소실되고 “주역”만이 후세에 전해지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근대로 접어들어 사주학은 음양오행학(陰陽五行學)으로 발달하면서 출생한 년월일시의 간지(干支)인 여덟 글자에 나타난 음양과 오행의 배합을 보고 그 사람의 부귀와 빈천, 부모, 형제, 질병, 직업, 결혼, 성공, 길흉 등의 제반사항을 판단하게 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주역(周易)에 의한 음양의 학설이 먼저 존재하였고 춘추 전국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태양계의 음양과 오행성 즉, 지구를 중심으로 음(陰)과 양(陽)을 의미하는 태양과 달, 그리고 오행의 기운을 의미하는 木星, 火星, 土星, 金星, 水星의 기운으로 운명을 판단하는 음양오행의 학설이 유포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약 3,000년 전에 태양계의 운행질서에 근거한 운기(運氣)를 가늠하고 사용을 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하다.
이러한 음양오행학의 실제적인 역사는 대략 3,0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지만 고서에서 음양오행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원은 제나라의 방사(方士) - 기원전 219년 신선의 술법을 연마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 - 에게서 비롯되었고 그 이론을 정립하고 후세에 전한 세 사람은 “추연(鄒衍)”과 “동중서(董仲舒, BC170 ~ BC120)” 그리고 “유향(劉向)”이다. 그래서 실제적인 역사는 약 2,200년 정도가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년월일시의 간지(干支)를 가지고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26년 이후의 일이다. 역학의 여러 분야 중의 하나인 자평명리학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는 중국의 唐나라 이후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까지 년주(年柱) 즉, 띠를 위주로 사람의 운명을 분석하던 것을 “이허중(李虛中)”이 일주(日柱)를 중심으로 보는 법을 창안함으로써 음양오행학의 관법이 오늘 날과 같은 완전한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송나라의 “서자평(徐子平)”이 “이허중”의 이론을 근간으로 한 “연해자평”이란 명저를 저술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시키니 오늘 날, 우리가 사용하는 자평명리학의 역사는 약 1,000년 정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